[헤럴드경제] 새로운 팝아트와의 유쾌한 만남

Date
2007-08-28 00:13

 

헤럴드경제생생뉴스
새로운 팝아트와의 유쾌한 만남 
2007.08.28
 
 
 
 
어느새 귀에 익어 듣고 있노라면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단어, 팝아트(POP ART)! 도도하고 쉽게 다가갈 수 없을 것만 같던 미술에서 대중화를 이끌어 낸 사실은 높이 평가할 만하지만, 소비문화에 휩쓸려 예술의 진정성을 소홀하게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볼 여지를 남긴다. 화려한 이미지 속에 숨겨진 팝 아트의 이면을 생각하며 ‘누보 팝(Les nouveax Pop)’ 전시회를 둘러보자.
 

‘누보 팝’. 낯선 이 단어는 영어로 ‘New Pop’이라고 읽을 수 있다. 미국의 팝아트와는 다른 새로운 팝이라는 의미로 쓰여진 만큼 이번 전시회는 지금까지 우리가 본 작품들과는 사뭇 비교되는 팝아트의 세계를 보여준다.
 
물론 광고, 만화, 보도사진 등 일상적이고 흔한 소재들을 이용하는 기본적인 틀은 그대로 갖고 있지만 미국 팝과는 달리 인간적인 따뜻함이 느껴지는 ‘서술적인 표현’을 읽을 수 있다. ‘팝’이라는 하나의 주제에 대해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7개국 10명의 작가의 각기 다른 해석은 회화, 조각 등 50여 점의 작품을 통해 다양하게 표현됐다.
 
작품들은 소재 또는 형식에 따라 크게 사물, 인물, 조형의 세 그룹으로 나누어진다. 비판적이며 한편으로는 유머러스한 작가들의 작품은 단지 시각적인 탐색에서 나아가 감성을 자극하며 생각의 다채로움을 느끼게 한다. 특히 풍자적 표현이 빠질 수 없는 팝아트의 특성을 윌리엄 스위트러브(William Sweetlove)와 안토니오 데 펠리페(Antonio de Felipe)는 명화 속 인물들을 통해 담아낸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를 쿠션의 이미지로 사용한 스위트러브는 대량생산으로 하나같이 똑같은 모양을 한 쿠션을 통해 명작마저 복제되는 현실을 이야기한다. 플라스틱을 소재로 만든 그의 작품은 그 소재로 인해 명화의 값을 한층 더 떨어뜨리는(?) 역할을 했다.
 
비엔나미술사박물관 전시의 메인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는 스페인 궁정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흰 옷의 어린왕녀 마르가리타 테레사’라는 작품을 차용한 안토니오 데 펠리페는 자신만의 팝 아트로 원작과는 다른 의미를 끌어낸다. 본래 작품의 화려한 색을 버리고 인물을 흑백으로 칠한 반면 공주의 손에 코카콜라병을, 뒷배경으로 코카콜라 로고를 새기고 강렬한 빨강으로 칠해 인간의 존재는 희미해지고 오히려 기업과 제품을 강조해 소비문화가 득세하는 오늘날을 풍자했다.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한 필립 위아르(Philippe Huart)의 작품 역시 외모지상주의 사회가 갖고 온 성형의 폐해, 대중매체에 의해 개성을 상실하고 획일적인 꿈을 키우는 아이들처럼 문제시되고 있는 일반적 소재들을 특성화시켜 표현했다. 그의 작품은 사진을 찍은 듯 사실적인 그림에 더해 원색을 사용해 시선을 끄는 것과 동시에 문제의식을 더욱 부각시켰다.
 
조형물을 팝아트로 표현해 시선을 끄는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 형광빛이 도는 분홍과 노랑으로 복제된 펭귄과 곰을 플라스틱 모형으로 제작한 크랙킹 아트 그룹의 작품이 바로 그것이다.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동물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지만, 플라스틱이라는 소재와 자연친화적이지 못한 튀는 색깔의 사용은 작품의 의도가 무엇인지 의문을 자아냈다.
 
하지만 이는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이미 변화된 현실에 물들어 쉽게 자연과 융화되지 못하는 사실을 암시한다. 단순히 동물들을 통해 의미를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모습을 빗대어 이를 표현한 것이다. 이는 똑같은 모양으로 만든 슈나우저를 보여주고 있는 작품에서도 엿볼 수 있다.
 
슈나우저의 앞발에만 신은 장화는 사람의 두 다리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며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어 하는 동물들을 표현하는 것에만 있지 않다는 사실을 말한다. 직접적이지 않은 유쾌한 풍자로 우리들에게 유지비용이 많이 드는 슈나우저 조형을 통해 소비문화를 질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안고 있는 소비문명사회의 문제점을 담고 있는 팝아트 작품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사실로 인해 현대 대중문화의 하나로 깊이 뿌리내릴 수 있었으며 지금의 자리에 이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분별한 소비태도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상실하고 있는 현재를 끊임없이 작품을 통해 다루며 이를 지적하고 있기 때문에 모순적이지만 대중들의 시선을 받고 있는지 모른다.
 
신효진 대학생기자(mondayi@naver.com)